*새로 시행되는 저작권법 때문에 원래 있던 사진을 삭제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나에게 정치라는 문제와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한 의식이 생긴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고, 헤이워드라는 작은 도시의 공공도서관에서 뉴욕타임즈의 1면을 장식한 촛불시위행렬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조그마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전까지 어떤것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자 하지 않았다. 나는 겁이 많았고, 아는 것은 너무나도 적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나의 판단조차 믿을 수 없어 무엇이 옳고 그름을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사상적으로 과잉보호아래 성장한 온실속의 화초 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조리한 대우는 마르크스가 세운 정교한 사회 시스템에서 생기는 단순한 에러라고 생각했다. 매우 어리석었다. 그러한 시스템은 기계처럼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어떤 힘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분노와 공포 앞에 체념하고만 있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싫었었다. 그의 정치 방향의 대부분은 혁신을 향한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언제나 단호하게 호통치는 경상도 사투리의 어투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경상도 출신의 가부장적인 단호한 말투를 지닌, 내가 싫어하는 어른상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그가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내가 어릴적부터 배신감을 느끼던 고향의 '꼰대'들을 무의식중에 떠올린 것 같다. 경상도 사투리는 정감 있는 말투가 아니다. 일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한 말투이다. 따뜻하고 배려 섞인 말은 하나도 있지 않은 건조한 말투의 대통령을 나는 이유도 모른채 싫어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가 어떤 일을 하려 했는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대부분의 이야기는 공감이 갔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에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한겨레21의 표지를 말없이 바라보고는, 전철 키오스크에서 집게에 걸린 하나남은 잡지를 사 들고 왔다. 한겨레21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 안에는 흑백의 미소로 손을 흔드는 전 대통령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문득, 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서 봉하마을로 내려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주민들을 앞에 두고 전 대통령은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감정에 벅차올라 말하는 걸 텔레비전에서는 처음 봤던 것 같다. 모든 짐을 내려 놓았다고,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때보다 기쁘다고 말하는 그는 얼굴은 환히 웃고 있었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것 같은 긴장이 서려있었다. '그럼 이 때까지 대통령하는 동안은 어떤 느낌이었다는 거야.'라는 심드렁한 말투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격양되어 있었고, 마이크를 타고 나에게까지 그 기쁨이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은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은 이래서 안된다'라는 나쁜 가치관과 싸우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물론,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손을 놓아버린 부분도 많다. 그리고, 자신의 변혁 이후를 생각하지 못해 미래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실수도 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의 시도는 그 동안 우리가 어떤 잘못된 가치관에 따라 살고 있었다는 걸 일깨워 주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산을 올라가면서 그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항상 집 뒤에 있던 그 바위 위에서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을까.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고, 변호사 출신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보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려 했을지 모른다. 그를 그 바위위에서 떨어지도록 만든 것은 그가 결코 머리가 나빠서도, 충동적이어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그것 이외에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끔 만든 무언가가 있어였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바뀔리는 없겠지만, 이번 한겨레21을 사 들면서,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한겨레21도 사서 보고, 새로 발행된 르몽드 디플로마띠끄도 보면서, 인터넷 뉴스의 자극적인 제목과는 좀 다른 시선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우리가 네이버와 다음의 뉴스 섹션을 포기하면, 좀 더 다른 세상이 보인다. 8자가 채 되지 않는 포털의 주소 너머에는 읽어야 할 책들도 들어야 할 사람들의 말도 많이 있다. 단지, 모니터 너머와 매일 오가는 출퇴근 버스 안의 상황 말고도 세상에는 기뻐하는 것과 고통받는 것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심하게 관찰해 책을 낸 학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 분이 남긴 유서는 아주 짧은 것이었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에게 하는 설명치고는 너무나 적은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어쩌면, 해답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분이 그 바위에서 뛰어내렸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도, 북받쳐오르는 슬픔도 모두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을 향해 써야 할 것이다. 부디 평안히. 남은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