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Journal Less Ordinary 2009/05/23 13:29
이틀전에 이모님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 사실, 몇년간 찾아뵙지 못해서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놀랐지만, 엄마의 전화 목소리는 굉장히 담담했다. 엄마는 형제자매중에 어린편에 속하신다. 최근 몇 년간 나이가 많은 이모분들과 고생하며 돈을 벌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동생인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한 집에서 자라던 형제 자매들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직까지도 슬픔이란 것이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상에 대해 담대해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 형과 제일 막내 이모와 차를 타고 내려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막내 이모는 돌아가신 대구 이모가 나오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누군가가 관과 옷을 고르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방 안에 가득 찬 관과 옷 사이에서 대구 이모는 아주 곱고 예쁜 감촉이 좋은 한복을 고르셨고, 막내 이모는 수의 옷감이 너무 안 좋은 것이라 입지 않는다고 던져 버렸다고 한다. 대구 이모는 곱게 차려 입으시고는 친정갔다 온다고 막내 이모에게는 나중에 오라고 대문 밖을 나서셨다고 한다. 막내 이모는 꿈에서 깨어 절에 가려고 했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못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우리는 차를 타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로 향했다.

10년만에 보는 이종사촌들의 얼굴을 잠시 보고, 식사를 하던 상주가 놀래서 급히 우리를 맞아 곡소리를 했다. 장례식장은 다행히, 육게장 냄새와 소주 냄새, 분주한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 평범한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 나는 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갔었는데, 친척 어른들과 형누나들에게 괜찮다고 말을 했다. 바쁜 와중에 내다 주신 밥은 맛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앞에 있어서 먹는다는 느낌이었다. 장거리를 운전한다고 일미와 땅콩등을 챙겨 주셨다. 한 시간도 채 앉아있지 못하고 엄마가 울산 가시는 막차를 타셔야 해서 모두들 나섰다. 막내 이모는 이사한 울산 집에 간다고 같이 따라나섰다. 엄마와 막내 이모는 나이로 치면 엄마뻘이 되는 대구 이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요즘 사는 이야기를 하시느라 울산으로 같이 향했다. 울산행 고속버스가 이미 떠나버려서, 동대구역에서 새벽 2시 무궁화 티켓을 끊어 드리고는 형과 나는 경부선으로 올랐다.

졸음이 몰려와서 땅콩과 초콜릿을 계속 씹으면서, 밤공기처럼 서늘하게 뺨에 와 닿는 생활속에서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나에게 죽음이란 것이 가장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는 전화를 침착하게 받고, '빨리 갈게'라는 대답을 하고, 싱크대로 가서 설겆이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 터지는 울음 소리가 났다.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리고, 엄마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 동안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도 그 어떤 것보다 슬픈 일이 있음을 몰랐던 나는 불안한 눈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가 같이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외삼촌이 돌아가시기 직전, 엄마는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고 아침 비행기로 서울로 왔다. 나는 외삼촌이 아산병원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엄마가 갑자기 올라온다는 말에 잠실로 향했다. 첫 비행기를 탄 엄마는 공항버스를 타고 잠실로 오셨다. 외삼촌은 이미 우리를 알아 보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고, 엄마는 미련하게 고생만 했다고 외삼촌의 손만 쓰다 듬었다. 고향인 창녕으로 내려가는 구급차에 탈 자리가 없는 엄마를 남부터미널에서 버스에 태워 보내 드렸다. 엄마는 다음날 새벽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빗소리나는 전화로 이야기했다. 그 때도 형과 나는 차를 타고 창녕까지 내력갔었다.

외삼촌 이전에도 가장 나이가 많고, 다리가 불편했던 이모님이 돌아가셨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슬픔을 겪었을 것이지만, 삶이라는 과정 앞에 있는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만 야속하게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한 때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는 모습은 남은 사람에게 많은 짐이 될 것이다. 엄마는 이번에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오시는 큰외삼촌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들들이 온다는 말에 또 대구까지 오셨을 것이다. 엄마는 언니의 죽음 앞에서, 옆의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것으로 할 일을 다하셨다. 동생인 막내 이모와 막내 이모의 늦둥이 딸과 함께 야간 무궁화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사촌동생의 재롱을 보고 아침밥을 같이 먹고, 커피 한잔을 하고 서울행 버스를 태워 주러 터미널로 향했을 것이다.

죽음은 항상 갑작스럽고, 그 다음의 일을 어찌해야 될 지 모르겠다는 부담을 안겨 준다. 삶아 있는 동안의 의미가 죽음과 함께 과거의 것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하는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아직도 죽음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만큼 철이 덜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삶과 대척점이 아닌, 삶과 하나의 고리위에 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가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처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들 그렇게 조금씩 마음 속에 상처를 하나씩 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비록 몇년 동안 인사도 못 드렸지만, 대구 이모님의 죽음 이후가 어떻게든 좋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막내 이모의 꿈처럼 고운 옷을 차려 입고 친정에 가서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드시면서. 대구 이모의 임종 소식과 함께 배우 여운계씨의 타계 소식이 있었고, 새벽에 잠들었다 깨어났더니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소식도 있었다. 이제부터 죽은 사람들의 삶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부디 죽음이라는 고통스런 단계 이후에는 좀 더 다른 의미의 단계가 있었으면 하는 기원을 해 본다. 나쁘고 안 좋은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모두들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맛난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는 풍경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