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드디어 다 봤다. 이 영화를 보게 된
데는 예전에 오클랜드에서 봤던 전시 "쿨의 탄생(Birth of the Cool)"가 한 몫 했다.
영화 상에는 당시 남부캘리포니아를 주축으로 한 '쿨'한 건축양식의 건물이 등장하고, 그
불규칙한 구조 사이를 캐리 그란트가 소박한 스릴감을 주며 아크로바틱하게 넘어 다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서스펜스 영화이지만 지금 영화를 보는 팬들에게는 그다지 서스펜스를 주지
못한다. 테크니컬러 배경의 너무 아름답고 찬란하고, 진행이 조금 느린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디테일하게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서 끼워 맞추는 묘미가 있다.
히치콕 영화를 많이 보질 못했지만, 아마도 이 영화가 히치콕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견본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한 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다. 원제가 "North by Northwest"이며, 국내에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식 타이틀은 잘 지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북서로 향하긴 하지만, 원래 진로가
있어서 북북서로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로저 쏜힐은 그냥 "쫓길"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왜?"라는 질문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 그냥 느린 액션과 쫓김
뿐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공항씬이 나오면서 "Northwest"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노스웨스트를 타고 북쪽으로가 맞는 제목일꺼야.'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것이다. 그리고,
이 귀중한 발견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북서로 진로를..."이란 제목에 낚일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놀랍게도 한글 위키피디아의 자료 때문에 얼마 걸리지
않아 해답을 찾고 말았다. 한글 위키피디아의 존재목적은 아무래도 이런 일을 위해서
필수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글 위키피디아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항목에 따르면 노스웨스트 항공은 스토리와
큰 연관성이 없이 등장하며, 이 타이틀이 정해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후보가 있었으나 햄릿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이것도 아귀가
딱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라고 나와 있다. 나중에 검색에 걸린 듀나(DJUNA)의 리뷰에서도
이 제목에 대한 설명이 비슷하게 나오며, "아마도 제목까지 거대한 맥거핀의 일부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아마도 노스웨스트 항공의 등장은 제목을 더욱 더 모호하게 만들기 위한 맥거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나도 들었다. 이 영화는 캐리 그란트가 수트를 입고 모험을 벌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떤 음모가 배경에 있고, 누구를 쫓는지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흡사 시리즈마다 살아 남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이야기 같지 않은가? 제임스 본드는 냉전 시대 이후의 산물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본드 앞에 대치하는 자를 무찌르는 활극에 불가할 뿐이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우리나라식 제목을 두고 오역의 사례라고 비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 스크린(Screen)이란 영화잡지에서는 한국식 제목을 오역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항공의 등장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가에서 북북서로 번역을 하고 있고, 노스웨스트
항공의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그런 해석은 잘못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과 위키피디아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이런 거대한 맥거핀에 희생 당하지
않을 힘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평론은 권위 있는 분석이지만, 이 영화같은
경우처럼, 유머로 만든 거대한 맥거핀에 조롱당한 일부의 권위가 나머지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경우가 분명 생기게 된다. 위키피디아의 집단지성의 힘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게끔 한다. 이런 경우를 보면, 수 많은 영화나 영상물에서 패러디되고 오마쥬되는
들판에서의 비행기에 쫓기는 로저 쏜힐의 장면이 생각난다. 이 장면은 굉장히 유명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보면 비싼 예산으로 찍은 농담같은 기분이다. 미니어쳐와 배경 그림
몇 장을 이용하면 충분이 찍었음직함을 아주 능청스럽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탄생은 이런 거장의 농담을 과잉해석하는 것을 친절하게도 방지해주고 있다.
*현재 준비중인 미디어 관련 블로그 가장 그럴싸한 거짓말을 쫓는 모험에도 포스팅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