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샌 프란시스코에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도보와 뮤니(Muni)라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용하면 손쉽게 어디나 갈 수 있는, 아주 높은 언덕 위를 올라가면 발 끝에 걸린 구름을 볼 수 있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도시를, 나는 주말마다 조금씩 퀘스트를 해결하는 어드벤처 게임의 주인공의 심정으로 다녀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보더스(Borders)에서 여느때처럼 클럽이 붐비기 전까지 책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지역을 소개하는 여러 책자를 모아둔 곳에서 "도시 이야기(Tales of the city)"라는 소설책을 찾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샌 프란시스코로 추정되는 도시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책을 둘러 보면서 제목과 대충의 문장들 사이에서, 매일 매일 탐방하던 익숙한 거리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샌 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이 책의 전부를 읽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며, 그 아름답던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 때즘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Armistead Maupin의 Tales Of The City는 San Francisco Chronicle이라는 신문에서 연재된 소설이었다. Mary Ann Singleton이라는 미중서부의 보수적인 도시 클리브랜드 출신의 젊은 여성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어 바버리 레인 28번지(28 Barbary Lane)에 아파트를 얻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이야기는 후에 6권의 시리즈와 소설 속 캐릭터인 Michael을 중심으로 한 스핀오프격인 Michael Tolliver Lives라는 소설까지 7권이 출간된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제작이 되게 된다.
이 소설은 한국에는 번역이 되지 않았고, 문학적인 깊이가 아주 뛰어난 고전이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워싱턴 DC의 보수적인 가정 출신의 작가가 여러 직업을 거치다가 샌 프란시스코 AP통신에 전근을 오면서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이방인들의 도시인 샌 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루 하루를 생동감있게 소설로 써내었다.
뒤늦게 후회한 점은, 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었고, 등장하는 장소의 반은 이미 가 보았기 때문에 지독한 그리움이 남고, 나머지는 가 보지 못한 장소이기 때문에 더욱 더 아쉬운 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예전에 미국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영문학 교수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샌 프란시스코 만 지역(San Francisco Bay Area)에는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모두들 어떤 이유로든 가족을 떠나서 둥지를 틀게 된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조그만 도시 안에서도 히스패닉 문화가 짙게 베인 미션 지역과 LGBT커뮤니티의 해방구인 카스트로 지역, 구름이 두껍게 깔리는 언덕에 위치한 차이나 타운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파웰 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당신보다 샌 프란시스코가 더 낯설지도 모른다. 샌 프란시스코는 그 이국적인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케이블카와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미항으로서의 향취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꼭 한 번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뉴욕을 가보지도 못했고, 시애틀을 가보지 못했고, 있던 곳에서 가까운 엘에이 지역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샌 프란시스코가 주는 도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 곳은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HBO에서 연극을 텔레비전 시리즈로 각색한 엔젤스 인 어메리카(Angels In America)에서 천국을 샌 프란시스코와 닮은 곳으로 표현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도시에서는 당신은 이방인으로서 존재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작은 도시를 나의 상상력의 무대처럼 즐겁게 탐험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표현이 굉장히 대중적이고(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정도로 모던하기도 하다) 신문 지면에 연재되던 소설이라, 2 페이지 정도에 하루에 일어난 일이 실시간 체험처럼 담겨 있어서 아주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만일, 이 책을 미리 읽었었다면, 돌로레스 파크를 지나서 처치 카스트로 디스트릭트로 향하는 쳐치 스트리트의 트랜스퍼라는 클럽과 세이프웨이를 지나 지하를 통해 샌 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과 엠바카데로로 향하는 J라인의 전차를 탈 때, 조금 더 깊은 감흥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샌 프란시스코의 아름다움을, 론리 플래닛 같은 책이 아닌 좀 더 생생한 느낌으로 전해받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