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미 재팬 뉴웨이브의 흐름은 지금의 다양한 장르로 교보문고의 매대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은 그 어떤 시대와 그 어떤 국적을 불문하고 존재하는 듯한 뭔가를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나만의 고전이 되었다.
상실의 시대는 한국어판으로는 한 열 번 쯤 읽었을 것이고, 영문번역판으로도 한 대여섯번 읽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노르웨이의 숲이란 열림원판도 읽었고(이 책은 잃어버렸다) 또 다른 '개똥벌레'라는 단편의 제목을 땄던 번역본도 읽었다. 그렇다고 문장을 하나 하나 줄 줄 욀 정도로 읽진 않았지만 가끔 아무데나 펼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는 한다. 상실의 시대는 울산집에도 한 권 있어서 내려가서 밤에 우두커니 스탠드만 켜고 읽는 일도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원래 상/하로 나뉘어서 상권은 붉은색으로 하권은 녹색으로 일본에서 발매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이 두 색깔의 조화는 곧 엄청난 판매부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여러 판본이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고, 문학사상사에서 사상 유례없이 작가의 양해를 구해 제목을 바꿔 출간한 "상실의 시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순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시골 터미널의 책 판매대나 동네 편의점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고는 한다.
내심 이 소설이 언제쯤 다시 번역될 지에 관심을 가졌었다. 문학과사상에서 하루키 소설을 독점출간하면서 대부분의 책들이 새롭게 번역되고 하드커버로 출판되었는데 유독 "노르웨이의 숲"만큼은 예전의 그 한 권짜리 "상실의 시대"번역판으로 계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과사상의 스핀오프 출판사인 문사미디어에서 원작의 디자인까지 고스란히 살린 양장판이 나왔을 때, 나는 밀린 카드값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은 채 주문으로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처음에는 틈틈이 읽다가 상권 중반부터 집중하기 시작해 밤을 새가며 단숨에 읽어버렸다. 주인공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관계가 시작되는 부분부터의 소설의 집중도가 굉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번역은 그 동안 "상실의 시대"판을 위해 다듬어진 문장과 호칭이나 인칭 문제가 비교적 원어에 가깝게 다듬어졌고 임의적으로 해석된 부제들도 없어졌다. 문장은 좀 더 흐름이 간결해지고 낯선 느낌이지만 새로운 느낌이 들게 번역이 되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보다 영어 번역판을 읽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원작자의 의도에 가까운 것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읽는 데 속도가 더 나고 문장이 주는 느낌의 감정이 상실의 시대보다 좀 더 강하고 원초적인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새롭게 번역하는 작업은 아주 중요하고, 한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선물이 없을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가 좋지 않은 번역을 만날 때이다. 번역이 좋지 못하면 자꾸만 원어가 어땠을 지, 이 단어는 제대로 옮겨진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되고 작품을 읽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문학작품의 번역은 그래서 정확한 번역과 새롭게 쓰는 작업 중간에서 번역작가들이 엄청나게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숲의 새로운 번역판은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다. 원작이 궁금한, 하지만 일본어를 구사하지 않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번역자의 고뇌와 판단을 통한 주옥같은 문장들을 다시금 읽으면서 새로운 책을 읽는 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노르웨이의 숲은 아주 유쾌하고 쿨하고 슬픈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과 관계, 그리고 죽음이라는 중대한 테마들이 등장하며 이런 주제들은 물흐르듯 단숨에 읽히면서 다가온다. 주인공이 유난히 혼자 있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많은만큼, 우리는 '사회'라는 껍데기 안의 '개인'이라는 존재도 만날 수 있게 된다. 보통의 연애소설 치고는 꽤 분량이 길고 거대한 테마를 다룬 이 작품은 그래서, 가끔 맞닥뜨리는 삶의 전환점에서 읽게 된다면, 내가 원초적으로 가진 삶의 목표나 방향 같은 것을 다시금 정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마도 무려 30년 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시대를 초월해서 새롭게 조명받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 외 굳이 알지 않아도 되지만 참고가 될 만한 사항들
*1*
제이 루빈의 평저 "하루키 문학은 음악의 언어이다"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숲"이란 제목은 작가가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따왔는데, 나오코가 설명한 것처럼 고독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숲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원래 비틀즈가 의도하고 영어권에서 받아들이는 의미는 "노르웨이산 가구"정도라고 한다. 영어 노래 가사나 제목이 일본에서 오역되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노르웨이의 숲도 그런 오역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2*
이 책은 김하늘과 유지태가 주연을 맡은 데뷔작이었던 "바이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3*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돌격대가 반디불이를 갖다주는 장면을 단편으로 쓴 "개똥벌레"또한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단편을 장편으로 다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개똥벌레 같은 경우는 아주 짧고 담백한 작품이지만 장편에서 담은 테마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다. 게다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소한 소재로 쓴 작품이지만 단편으로서의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숲과는 별도로라도 좋은 소설이다.
*4*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블로깅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고향을 떠나서 "자신"과 "세상"과의 간극을 좁히는 아주 상징적인 작품이다. 특히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라는 태도는 나중에 해변의 카프카까지 등장하는 작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이다.
*5*
일본어 책을 읽는 독자라면 하루키가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기타 다른 영문학 서적의 번역판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사실 이런게 굉장히 부럽다.
*6*
하루키 책은 무국적성이 특징이지만, 제이 루빈은 그의 평저에서 그렇더라도 일본어를 영어로 옮기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아무리 외국소설의 영향을 받아서 쓴 하루키의 글이라도 일본어적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일본어와 한국어가 공유하는 정서의 폭이 넓어서 한국어가 모국어인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7*
제이 루빈에 따르면 하루키의 문장은 재즈의 리듬을 글로 옮긴듯한 인상을 주며, 그런 리듬감이 그의 소설을 독특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의 책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하는데, 클래식과 폭 넓은 재즈 레퍼런스가 등장(실제로 하루키는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다.)한다. 그리고 하루키는 후티 앤 더 블로피쉬같은 루츠 록 계열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고 한다.
*8*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 최근 영어로 번역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에는 언제쯤 번역되어 소개될 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