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성에 관하여

POP*OUT 2008/07/14 06:43
웹표준의 문제, 이종 플랫폼간의 개방화의 문제, 호환성의 문제는 단지 컴퓨터를 좀 안다는 사람들의 문제처럼만 여겨 지지만, 이 문제의 배경에는 권력과 사회구조의 문제가 들어 있다. 나와 관계없을 것 같은 조그마한 일들이 사실은 지금의 거대한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마 점점 컴퓨터를 기반한 활동이 많아지고, 정보의 가치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더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지금 정권이 범하는 오류는 이런 문제도 권력을 이용해 컨트롤할 수 있다는 '그래도 있는 사람들만의 뭔가가 있다'는 그런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한국의 인터넷과 IT인프라에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맥에서 작업이 귀찮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일들이 하나 같이 전근대적인 업무 프로세스의 결과물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당시 넷스케이프와 익스폴로러를 동시 지원하던 인터넷 뱅킹이 어느 새, 윈도 XP환경에서도 오류가 나는 일이 발생해도, 계속해서 업데이트에 땜질만 해대는 각종 플러그인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벌써 각 회사와 정부기관에 기획서 들고 들어가서 온갖 로비와 협박을 동원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지금의 금융보안 관련 법규는 실제 컴퓨터 활용여부를 무시한 항목으로 구성되었고, 그런 법규를 따르는 금융사들은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해 무조건 깔고 보는 프로그램을 대규모로 구입하고 있다.

이런 조그마하다면 조그마한 문제들이 쌓여서, 결국 사람말을 안 들어주는 사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의 생각은 아주 다양해져서 그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사람들의 편의를 대변해야 할 구조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하는 일이 남이 하는 일과 어떤 관계를 가질 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즉 호환성에 대한 고민이 없는데서 왔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과연 없을까?

회사나 어떤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끔 경험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한글 문서같은 것을 작성하다가 표를 삽입하거나 페이지 번호나 머릿말 등을 넣을 작업을 할 때는 문서를 여는 사람마다 그런 것 때문에 무수한 삽질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가 나와는 별 관계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매일 배우는 내용은 같고 문제 형식은 같아 보이는 데 진전이 없는 교육과정이나, USB라는 범용 규격이 있음에도 채택한 24Pin휴대폰 표준잭과 20Pin과의 호환성을 위해 거추장스럽게 달아야 할 젠더의 문제라던지, 전국에서 호환되지 않는 버스카드의 문제 같은 것은 기술적 문제라기 보다는 호환성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문제가 통화가치에 대한 문제나 번역에 따른 문화의 세계화같은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아주 조금씩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막스의 자본론은 사회주의라는 제도로 인해 전쟁과 냉전이라는 아픈 결과도 낳았지만, 막스의 자본론에는 '메타포(은유)'라는 인문학적 장치로 다른 플랫폼 간 전환이 되는 지식의 호환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들어 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나와 세상의 관계를 끊임 없이 규명해야 한다. 사실, 그런 인생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불편을 겪는 그런 순간이 왜 발생되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추측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한 기업총수와 토론회 같은 자리에 참석한 우리 학교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그 기업 총수는 어떤 대화 끝에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그럼 밥은 왜 먹나?"하는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지금 사회에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아마 대답할 수 있는 경우가 백만가지도 더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업총수는 밥이라는 에너지원과 사람의 정신을 움직이는 철학이라는 에너지원 사이의 아무런 호환성도 찾지 못한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이 지배하는 한 우리 주변의 사회는 모순과 오류로 가득찬 기괴한 괴물들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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