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때문에 헬베티카는 컴퓨터상에서 아주 널리 사용되며, 애플을 베낀 마이크로 소프트는 에리얼(Arial)이라는 비슷한 글꼴을 선보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Helvetica)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흔히 우리가 고딕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San-Serif'글꼴의 모델인 헬베티카 글꼴에 대해 이야기한다. 헬베티카는 사실 글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잘 알고 좋아하는 글꼴이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헬베티카는 단순한 글꼴의 문제를 넘어서 모더니즘 디자인의 핵심이며, 알파벳 타이포그래피가 현대 디자인에서 중요한 힘을 발휘하는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헬베티카는 스위스에서 2차 세계대전, 즉 50년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탄생한 폰트이다. 이전까지의 모든 암울한 기억을 잊고 세련되고 우아한 산세리프 글꼴을 만들고자 탄생했다. 원래 이름은 Neue Haas Grotesk였는데, 가장 중요한 클라이언트인 미국을 겨냥해 새로운 이름을 고안해냈다. 스위스의 라틴어식 표기인 헬베티아(Helvetia)를 모태로 스위스를 상징하는 글꼴 이름인 헬베티카(Helvetica)가 탄생한 것이다.
헬베티카는 조형적으로 아주 완성도가 높은 글꼴이며, 글자가 표현되는 검은색 잉크의 역할 뿐만 아니라, 그 여백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여긴 글꼴이라고 한다. 타이포그래피 관련 서적이나 웹사이트 등을 찾을 때 항상 글꼴을 배열하는 그리드와 위치를 결정하는 각종 용어들 사이에 강렬하게 얼굴을 내미는 글꼴이 바로 헬베티카이다. 아이팟 나노부터 스크린용 폰트로 사용되는 것이 헬베티카이다.
헬베티카는 정말 어디에서나 사용되며, 누구나 접하기 쉬운 글꼴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헬베티카이냐 아니냐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헬베티카가 아주 조형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에 단일 글꼴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헬베티카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파시즘 적이고 군사적인 폰트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당신이 형편없는 디자이너이거나, 혹은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플라이어 따위를 디자인 할 때 한 사이즈의 헬베티카 볼드를 사용하라. 그러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충고에 따랐다.
내가 듣는 문학수업에서는 "과연 20세기가 끝났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우리는 Y2K를 두려워하며 밀레니엄을 넘겼지만 아직 우리 안의 21세기가 도래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한다. 헬베티카는 20세기가 발명한 최고의 글꼴이다. 글꼴 안에 너무나 많은 것이 있어서, 글꼴 하나 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어떤 디자이너는 헬베티카는 모든 글자가 똑같아 보이는 획일적이고 형편없는 글자이지만, 어디에서나 통용되기 때문에 유비쿼터스 적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그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없을 정도로, 공기나 중력같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이 글꼴을 바꾸는 그 무언가가 올 때 아마도 타이포그래피의 21세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꼴의 21세기, 아니 20세기조차도 언제쯤 도래할 지가 의문이다.
Extra
Microsoft and Post-Helvetica
서두를 장식한 에리얼(Arial)폰트 이후에 마이크로 소프트는 베르다나(Verdana)나 타호마(Tahoma)같은 글꼴을 화면용 글꼴로 사용하면서 글꼴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를 부던히 했던듯 하다. 윈도 비스타는 전혀 새로운 그래픽 엔진으로 출시하면서 각 언어에 맞게 화면상 가독성이 좋고 LCD에 적합한 클리어타입 기술이 적용될만한 폰트를 선보인다. Segoe UI이다. (한국어판은 산돌에서 디자인한 맑은 고딕이 적용된다) 이 글꼴은 스위스에서 포스트헬베티카 폰트로 각종 간판에 사용중인 Frutiger같은 글꼴과 유사성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한다.
헬베티카, 한글꼴
한글글꼴의 문제는 사실, 명조체와 고딕체, 굴림체의 광범위한 사용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글꼴을 그대로 따서 비슷하게 만든 명조체와 고딕체는 근현대 인쇄의 표준이 되어 버렸고, 윈도에 탑재된 굴림체는 한글꼴의 고유한 모양을 무시한 최악의 글꼴로 인식되고 있기도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뉜 한글의 조형을 무시하고 네모꼴 글꼴로 디자인해 버린데서 출발한다. 안상수같은 글꼴디자이너에 의해 탈네모꼴 글꼴에 대한 디자인이 선보였고, 최근에는 다양한 글꼴회사들이 고딕과 명조를 대체할 만한 글꼴을 디자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윈도 비스타의 맑은 고딕은 기존의 돋움의 네모꼴에서 상당히 벗어난 디자인을 선보이며, 화면에서의 가독성이 뛰어난 장점 때문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제는 맑은 고딕은 너무 가늘고 부드럽게 보인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헬베티카 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대표적 글꼴에 대한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