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고메(gourmet)한 커피 애호가라면,

모카포트를 약한 불에 올려둔 후 '그으으윽~'하는 사운드와 함께 알싸한 커피향이 솟아 오르는 냄새를 좋아할지도,

매일 아침 하얀 증기를 내뿜는 퍼컬레이터로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 커피로 하루를 시작할지도,

아니면, 맨발에 지난밤 사 둔 푸마 스니커를 신고, 하늘거리는 린넨 셔츠를 입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해 마실지도,

일정한 굵기로 갈아낸 아라비카종 원두를 보덤 프레스로 눌러서 자줏빛이 감도는 80%불투명한 커피를 잔에 따를 지도 모를...

아니면 원두를 그대로 넣고 진하게 달여서, 이스탄불의 한 동네 모퉁이에서 물담배와 함께 이웃들과 즐길지도 모를일이다. 옆의 노파가 마신잔을 미온수로 헹궈서 다시 옆의 아가씨에게 건네주듯 말이다.

어쨌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이렇게 힘들었다면 대신 홍차나 녹차를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은 취소다. 역시 커피만한게 없다.)

언젠가는 한 번쯤 위의 방법대로 커피를 즐기고 싶지만,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자 하더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매일 등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퍼마켓에서 고를 수 있는 커피는 맥심과 초이스밖에 없다. 게다가 둘 다 경쟁이라도 하듯 믹스제품밖에 출시하지 않는 것이다. (믹스제품들의 커피맛은 최첨단을 달리는데, 정작 병에든 커피 맛은 거기서 거기인것...) UCC나 맥심 스페셜티같은 대형마트의 수입인스턴트 커피도 눈에 들어 오지만, 인스턴트 치고는 가격이 너무 비싼 게 흠이다.


처음 할머니댁에 선물로 들어온 이 커피의 100g캔을 봤을 때,
머릿 속에서는 영화 해피 투게더의 이과수 폭포(Waterfall음악이 흐르면서)장면이 나왔다. 너무나도 시원하게 물줄기가 내려가고 있는 하얗게 일어나는 포말들을 다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만큼 경쾌한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과수 커피는 너무나도 맛있어 보였다.
너무나도.

이 근본을 알 수 없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서, 한 동안 그 캔을 구하러 미친듯이 다녔지만,

의외로 인터넷 쇼핑몰이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등에서도 판매중이고, 신세계 지하식품코너나 남대문 같은 데서도 꽤 팔고 있었다. 젠장.

우선 커피는 100g의 앙증맞은 캔 포장으로 되어 있는데, 스푼을 밀어넣어 뚜껑을 따면, '뽁'하는 소리가(꼭,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나면서 은박으로 보호된 내용물이 나온다. 스푼의 손잡이를 밀어 넣어서 은박을 벗겨내면 다갈색의 고운 커피 분말이 나오면서 고소하고 담백한 커피향이 코끝에 닿는다. 이는 흡사,

해방 전후 문학가의 소설에 보면 미군보급품으로 나온 인스턴트 커피를 어렵게 구해서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 뚜껑을 열자 자줏빛 가루가 터져 나오고... 컵에 따르고... 음미하고...이런 내용이었는데, 어쨌던 그 장면의 커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00g은 조금 과하게 마시다 싶은 정도의 사람들에게는 (머그잔 진하게 한가득) 한 달 조금 넘으면 부족할 정도의 양으로, 100g에 3~4천원 하는 커피 치고는 그 맛이 가히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 고급 에스프레소 커피를 추출할 때 생기는 크레마(Crema)현상까지 보면서 그윽한 향이 코끝으로 전해져온다.

커피의 맛은 보통 짙은 빨간색의 테이스터스 초이스 에스프레소 인스턴트(270여 그람 들이의 봉지로만 파는데, 가루가 많이 날리지만 맛이 진한 게 특징이다)보다 쓴 맛은 더하지만 고소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인스턴트 커피로 이런 호사를 누린다는 게 죄스러울 정도니까...

어쨌든 나는 과장이 심하고 게으른 사람이라, 이런 커피 한 잔에 감사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하더라도...이과수 커피만한 건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다른 커피는 캔이나 병을 쳐다봐도, 이과수 폭포 장면과 Waterfall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장국영과 양조위가 한가하게 바라보던 신비한 분위기의 이과수 스탠드도 결코 구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