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게 된 데는 봉준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한강의 어느 다리에서 기어올라 오는 괴생명체를 보고난 후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해서 이다.
다른 모든 말에는 어떤 대답 같은 게 떠올랐지만, 감독의 이 한마디에 할말이 없었고 나는 하루 일찍 상영하는 전야상영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달콤한 맛의 카라멜 팝콘과 함께 시작한 영화는 예전의 미군 독극물 방류사건을 패러디하면서 시작한다. 넓디 넓은 한강이니 어떠냐고, 마음을 넓게(Broad) 먹으라는 한 미군 상사의 말에 미스터 김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수구로 포름 알데히드를 방류한다. 그렇게 broad한 마음을 먹고 방류한 포름알데히드 때문에 넓디 넓은 한강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장소가 된다.
영화는 그러한 한강에 출현한 괴수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만약, 이 영화가 예전의 용가리처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고질라와 별다른 차이 없는 CG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렇게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친구들과의 휴대폰 대화 속에서 쌍욕과 함께 뭍혀졌을 터...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과도 같이 사건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중심에서 사건과 함께 부대끼게 된다.
어느 평범한 대도시 강가에서 나타난 조금 큰 괴수의 출현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준다. 여기서 괴물의 첫 출현에서도 사람들은 그냥 신기한 생물이지 어떠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괴물의 존재에 한국은 그냥 매일 있는 길 가의 전철 공사 정도쯤으로 불쾌하게 여긴다. 미국이었다면 벌써 온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소시민 영웅이 먼저 튀어나왔을 것이다.
너 때문에 우리가 모인다, 라는 딸의 장례식에서 일그러진 가족간의 관계는 시종일관 그 협동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되고, 영화의 결말까지도 그 초점이 조금씩 어긋난다. 괴물은 어디서 왔고, 왜 위협이 되는 지 따위의 설명은 생략한 채,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는 우리가 '괴물'이라고 붙이게 된, 흡사 그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SARS를 괴질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이 '괴물'로 호칭한다. 이 영화에서 괴물에 대한 국가의 대책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고, 이에 잘난 척 하는 주변국가들의 시어머니같은 간섭이 계속되고, 괴물 출현에 영웅처럼 뛰어든 한 미군병사도 결국 쇼크로 사망하게 된다. 괴물에 대한 대책이 없는 국가는 애꿎은 피해자들을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로 몰아세워 그 관심을 돌린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각 기관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도 계속되고, 사람들은 현상금 사냥까지 나선다. 괴물도 숫자도 하나 밖에 없고, 가끔씩 무리한 액션이 미끌어지기도 하고, 선과 악 그 어느쪽인지 알 수도 없다. 결국 새끼를 하나 낳고는 질기게 저항하다가 죽게 된다.
괴물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무엇'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고유의 무언가를 은연중에 '어글리 코리안'한 것으로 몰아 세우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애 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모습일 뿐이다. 서울에만 있는 한강과 그 곳에 있는 괴물은 우리가 만든 괴물의 모습이다. 극중의 가족들이 싸운 것은 괴물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괴물처럼 보는 이상한 사람들도 그 대상이다. 국제적 해결방법이란 결국, 우리 한강에 괴물하나 잡자고 이상한 생화학 무기 살포하는 것 하나밖에 없다.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괴물에 붙잡힌 희생자 하나 살리려고 군대 하나 쯤 희생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한국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나도 한국 사람이고, 내가 과연 한국에 대해 싫은 것인지 내가 잘못된 것인지 혼란 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모든 불쾌한 것들이 모여 한강에서 괴물이 되어갈 것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The Monster'가 아닌 'The Host'이다. 영화 중간에 '숙주(host)'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한강의 주인쯤 되는 괴물의 존재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우리 모두에 대한 컴플렉스와 애정, 그 애증의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괴물이다.
참,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 이런 걸 보면 영화란 매체가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게 될 정도니까.

